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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후원 부용정과 연경당

★러블ㄹ1정숙★ 2013. 8. 26. 21:02

 

출발..

처음 만난곳이

부용정입니다

 

 

 

부용정

우선 휴식과 학문적 용도로 쓰인 아름다운 건물들입니다.

이곳은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습니다.

300평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과 서향각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고,

영화당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중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입니다.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부용정은 연못에 피어 있는 한송이 꽃의 형상으로 2012년 보물 제176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행사가 치러지던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주합루도 2012년 보물 제 176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각양각색의 건물로 각각 특색 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우러지면서 절묘한 경관을 이룹니다.

현재 어수문을 중심으로 생울타리인 취병을 재현하여 지역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참조)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이십니다

 

 

 

 

 

 

 

 

 

 

 

 

 

 

 

 

이곳에서 활쏘기도 하고

과거 시험도 보았답니다

이몽룡이도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보았다는 설이 있다네요

 

 

 

불로문입니다

불로문은 하나의 통돌을 깍아 세운 문으로

임금이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애련정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인 애련지(愛蓮池)는 창덕궁 불로문(不老門)을 지나 왼쪽에 자리하고 있고,

애련지 북쪽에 서 있는 간결한 정자가 애련정(愛蓮亭)이다.

애련지는 부용지와 달리 가운데 섬이 없는 방지(方池)로, 사방을 장대석으로 쌓아올렸다.

입수구가 독특한데, 흘러내리는 도랑물을 물길을 따라 폭포수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원래는 연못 옆에 어수당(魚水堂)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애련정은 숙종 18년(1692)에 애련지의 물가에 지은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이익공의 사모지붕 양식을 띠고 있다.

 일반 건물에 비해 추녀가 길며 추녀 끝에는 잉어 모양의 토수가 있다.

물 기운으로 불 기운을 막는다는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것이다,

건물을 받치는 네 기둥 가운데 두 기둥은 연못 속에 잠겨 있는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정자 사방으로 평난간을 둘렀는데, 낙양창 사이로 사계절이 변하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애련’이라는 이름은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가 쓴 ‘애련설(愛蓮設)’이라는 시에서 유래했다.

숙종이 지은 ‘애련정기(愛蓮亭記)’가 ‘궁궐지(宮闕志)’에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덕궁 애련지 및 애련정 [昌德宮 愛蓮池,愛蓮亭] (두산백과)

 

 

 

창덕궁 연경당 (昌德宮 演慶堂)

주합루와 영화당 구역을 감싸고 있는 작은 능선을 지나면 골짜기에 연경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 환경은 아름다운 숲과 연못 및 정자 등이 어우러져 이상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다.

우측의 솟을 대문인 장양문은 사랑채로 통하고,

이 문을 지나 사랑마당에 들어서면 좌측에는 안마당과 사랑마당을 경계 짓는 담장이 꺾여 있으며

담장 가운데에 문인 정추문이 있다. 그리고 좌측의 평대문은 안채로 통하는 수인문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담으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나 한번 꺾여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전체 공간구성은 서로 연결된 만(卍)자 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경당이란 이름은 원래 사랑채를 가리킨 것이었으나 지금은 이 건물들을 통틀어 연경당이라 부르고 있다.

사랑채의 오른편으로는 서재 구실을 하는 선향재가 위치해 있으며,

선향재 뒤편의 경사진 언덕에는 화계를 설치하고 제일 높은 곳에 농수정을 배치하였다.

‘연경(演慶)’은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궁궐지』에는 순조 28년에 총 120칸으로 건립하였다고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비고』,『한경지략』에는 순조 27년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1827~8년(순조 27~8)경 지은 효심이 담긴 집이다.

창건 직후 연경당에서는 효명세자가 신하를 접견하거나 진작례를 거행하였다.

헌종 대 이후에는 익종(효명세자)의 어진과 모훈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1857년(철종 8)에 터가 서늘하고 습하다는 이유로 익종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한 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그 후 고종 대에 이르러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중요한 정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사랑채 건물은 장대석기단 위로 사다리꼴의 초석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평주 위에는 장여가 도리를 받고 있는 굴도리집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안채는 납도리로 되어 있으나 사랑채는 굴도리로 되어있다는 점과 안채,

사랑채 모두 각기둥을 사용했다는 점으로 조선시대의 남녀유별과 가옥규제에 대한 법령을 충실히 따랐음을 볼 수 있다.

사랑채 평면은 정면6칸, 측면2칸으로서 맨 우측에 누마루가 있고 가운데 4칸은 툇간을 개방하였는데,

4칸 중 우측2칸이 대청이고 좌측2칸이 방이다.

그리고 안채에서 뻗어 나온 온돌방 2칸은 이 마루 뒤로해서 사랑방에 1칸이 연결되어 있다.

안방의 서쪽과 뒤편으로는 사랑채까지 쪽마루가 연결되어 있어 사랑채에서 안채로 갈 수 있게 되어 있고,

이 경계부분에는 판문을 달아서 개폐할 수 있게 하였다.

평면구성에 있어서는 왼쪽 끝에 누 1칸이 있으며 전면에 반 칸의 툇마루가 대청에 나 있다.

연경당은 건물배치와 공간구성 등에서 당시의 유교적 철학이 적용된 궁궐 내 사대부 집으로 당시의

주택과 비교해 볼 수 있는 한국주택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궁전의 조영법식과 기술력으로 건축되어 세련되면서 단아한 세부양식이 궁궐건축 고유의 품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연경당은 조선시대 궁궐 내 사대부 건축으로서 그 가치가 뛰어나다.

(문화재청참조)

 

 

 

 

 

 

 

 

 

 

 

 

 

 

 

 

 

 

 

 

이곳에선 예전엔

임금님이 연회를 하던 곳이랍니다

지금은 창덕궁 달빛기행때 공연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