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사랑, 오래도록 아픔 - 김정한
가슴에 품었던 시리우스
먼 하늘로 날려보내고 돌아오는 길,
두 볼 사이로 굵은 눈물방울 뚝뚝 흐릅니다
굳게 닫힌 문을 두고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그 안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문이 열릴 때까지...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아온 죄로
너무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 죄로
너무 아름다운 것을 훔쳐버린 죄로
당신과 나 그 안에 갇힌 囚人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나브로 모든것이 잊혀지고 지워질 줄 알았는데
풍선 날리듯 뜨거운 입김불어 <후우>하고 날려 보내고 나면
다아 끝날 줄 알았는데...
아주 익숙한 머그잔도
아주 익숙한 스웨터도
시린 겨울바람으로 다가와
사정없이 나를 울리고 있습니다
온몸이 그리움에 잠겨
초겨울 한계령휴게소 자판기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마저도
사시나무 떨듯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떠나버릴지라도
시나브로 잊혀질지라도
뒤엉킨 손금 위에 안긴 일회용 커피의 뜨거움처럼
영원히 떠나기 전에 단 몇 초만 이라도
아름다운 눈, 부드러운 입술
따뜻한 손의 감촉을 느끼고 싶습니다
사랑이 끝나는 곳에 세워 둔 추억이라는 그리움이
일회용 자판기 커피처럼 다가와 나를 울립니다
너무 아름다운 것은 목숨이 짧다는 말이 이제서야 느껴집니다
그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아름다운 흔적 남기고 불시의 이별이 되는 사랑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시나브로 사랑, 오래도록 아픔
김정한시집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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